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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천 년을 넘어 사랑받는 한국의 술

알고 먹으면

by ALGOO_M 2025. 2. 1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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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문화의 산물이다. 세계적으로도 다양한 술이 존재하지만, 한국에는 유독 ‘정(情)’이 담긴 술이 있다. 바로 막걸리다. 단순히 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노동의 피로를 달래고, 흥을 돋우며, 때로는 정치적 의미까지 지녔던 술. 오늘날에는 글로벌 K-푸드 열풍을 타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막걸리의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오면서 시대의 굴곡을 겪었고, 때로는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막걸리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오늘날 다시금 부활하게 되었는지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1. 막걸리의 기원, 언제부터 마셨을까?

 

신라의 전사들이 마신 술?

 

막걸리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주다.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시대에 술을 빚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당시에는 주로 제사와 의례에서 사용되었다. 다만 신라인들은 전쟁을 앞두고 전사들에게 술을 마시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적을 무찌르기 전에 용기를 내기 위해 마셨던 술이 바로 막걸리의 원형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막걸리는 왜 ‘탁주(濁酒)’라고 불렸을까?

이는 술이 맑아지기 전에 뜨거운 밥을 넣고 흔들어 마셨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으면서 위에는 맑은 술(청주)이 떠오르고, 아래에는 탁한 술이 남는데,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굳이 맑게 거르지 않고 그대로 마셨다.

 

이러한 이유로 막걸리는 ‘농주(農酒)’라고도 불렸다. 즉, 농부들이 밭에서 흙 묻은 손으로 한 사발씩 들이키던 술이 바로 막걸리였던 것이다.

 

2. 고려와 조선, 왕도 즐긴 막걸리?

 

고려 시대, 귀족도 즐긴 막걸리

 

고려 시대에도 막걸리는 대중적인 술이었다. 고려는 불교 국가였고, 사찰에서도 술을 빚어 마셨다. 특히 승려들이 직접 술을 빚어 마셨던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으로 치면 수도승이 막걸리를 마시는 셈인데, 당시에는 금주령이 없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 궁궐에서도 막걸리가 소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의 대표적인 술 중 하나인 ‘이화주(梨花酒)’는 막걸리와 비슷한 형태의 술로, 걸쭉한 질감이 특징이었다. 이는 후에 조선 시대에 더욱 발전하여 서민들의 술로 자리 잡게 된다.

 

조선 시대, 금주령 속에서도 살아남은 막걸리

 

조선 시대에는 술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다. 유교를 국시로 삼았기 때문에 음주를 지나치게 하면 곱지 않은 시선이 따랐다. 하지만 ‘금지된 것이 더 달콤하다’는 말처럼 막걸리는 조선 사회 곳곳에서 꾸준히 소비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술에 대한 규제가 조금씩 완화되었고, 양반들도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실학자들은 막걸리의 효능에 주목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정약용은 막걸리가 건강에 좋다는 점을 강조하며 직접 담가 마셨다고 전해진다.

 

또한, 막걸리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 시기에는 군인들에게 보급되었으며, 농민 봉기 때는 민중들의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 전쟁과 혁명의 순간마다 막걸리는 늘 함께였다.

 

3. 일제강점기, 막걸리의 위기

 

20세기 초, 한반도에는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일제강점기다. 일본은 1909년 주세법을 도입하면서 한반도 내에서 술을 만들고 판매하는 과정을 철저히 통제했다. 이에 따라 개인이 술을 빚는 것이 불법이 되었고, 많은 전통 양조장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막걸리는 서민들의 삶과 너무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에 암암리에 계속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밀주(密酒)’라고 해서 몰래 술을 빚어 마시는 문화가 퍼졌고, 장터나 뒷골목에서는 여전히 막걸리가 거래되었다.

 

일제는 쌀을 수탈하면서 막걸리의 원료를 밀가루로 대체하도록 했다. 이 시기부터 전통적인 쌀 막걸리가 사라지고, 밀가루와 감자 전분으로 만든 막걸리가 대중화되었다.

 

4. 현대의 막걸리, 부활하다

 

해방 이후에도 막걸리는 한국인의 술로 남아 있었다. 1970~80년대에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에서도 막걸리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 되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소주와 맥주가 대중적인 술로 자리 잡으면서 막걸리는 점차 그 입지를 잃어갔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 막걸리는 ‘건강주’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의 전통 문화가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으면서 막걸리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한류 열풍을 타고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막걸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다양한 맛과 스타일로 재탄생하고 있다.

 

5. 막걸리의 미래는?

 

오늘날 막걸리는 단순한 ‘서민의 술’이 아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빚은 프리미엄 막걸리가 등장하고 있으며, 유기농 쌀과 다양한 과일을 활용한 막걸리도 출시되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주류 시장에서도 막걸리를 와인처럼 브랜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막걸리는 한국인의 삶과 함께 해온 술이다. 신라의 전사들이 마셨던 술, 고려의 승려들이 즐겼던 술, 조선의 양반과 농민이 함께 마셨던 술, 그리고 오늘날 세계인이 찾는 한국의 전통주.

 

이제 막걸리는 더 이상 과거의 술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가장 ‘핫한’ 전통주로 자리 잡고 있다.

 

한 잔 들이켜보자.

천 년의 역사가 담긴 그 맛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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