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맛골의 역사: 조선 서민들이 만든 비밀스러운 골목

 

피맛골은 서울 종로구와 중구 일대에 자리 잡았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한때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깃든 공간이었다. “피맛골”이라는 이름은 “말을 피하다”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했으며, 조선 시대 양반들의 말발굽 소리를 피해 백성들이 숨어들던 뒷길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은 단순한 통로를 넘어 음식점, 주점, 상점이 밀집한 먹자골목으로 발전하며 서울의 밤을 밝히는 서민의 해방구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2000년대 재개발로 대부분 사라진 피맛골은 이제 추억 속 장소로 남았지만, 그 역사 속에는 권력과 저항, 생존과 변화의 드라마가 얽혀 있다.

1. 기원: 조선 시대의 피마길과 골목의 시작
피맛골의 역사는 조선 시대(1392~1897)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당시 한양)은 조선의 수도로, 종로와 같은 대로는 양반과 고관대작들이 말을 타고 행차하는 주요 통로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종로가 “육조거리”로 불리며 관청과 상업이 집중된 중심지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넓은 대로에서 양반의 말을 마주친 백성들은 엎드려 인사해야 하는 예법을 강요받았다. 이를 피하기 위해 서민들은 종로 뒤쪽의 좁은 골목으로 몸을 숨겼고, 이 길이 “피마길” 또는 “피맛골”로 불리기 시작했다.
피맛골은 종로 1가에서 6가에 걸쳐 형성되었으며, 특히 청진동, 운니동, 장사동 일대에 집중되었다. 이 골목은 폭이 좁아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힘들 정도였지만, 백성들에게는 자유와 안전을 제공하는 피난처였다. 초기에는 단순한 통로였으나, 18세기 말부터 상인들이 이곳에 자리 잡으며 포목, 그릇, 농산물을 거래하는 소규모 장터가 생겼다. 『동국문헌비고』에는 종로 주변 뒷골목에서 “서민의 장사”가 번성했다는 언급이 있으며, 이는 피맷골의 초기 모습을 엿보게 한다.

비하인드 하나: 금지된 길의 비밀 집회
조선 후기, 피맛골에서 비밀 집회가 열렸다는 전설이 있다. 1790년대, 한 하급 관리가 양반의 횡포에 분노한 백성들을 모아 피맛골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모임”을 열었다. 그는 “이 좁은 골목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며 장소를 택했지만, 관아에 발각되어 처벌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백성들이 피맛골을 단순한 통로가 아닌 저항의 공간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이 비밀 모임은 금지되었지만, 피맛골이 서민의 숨은 터전으로 뿌리내린 계기가 되었다.

2. 조선 말기와 개항기: 피맛골의 상업화와 변화
19세기 조선 말기, 피맛골은 상업 중심지로 변모했다. 1876년 개항 이후 일본과 서구의 무역이 늘며 종로 일대는 경제적 활기를 띠었다. 피맛골은 종로 대로의 번잡함을 피해 소규모 상인들이 몰리는 공간이 되었고, 포목상과 잡화상이 골목을 채웠다. 이 시기 피맛골은 “서민의 시장”으로 불리며, 양반 대신 중인과 천민의 삶을 품었다.
개항기에는 주막과 음식점이 늘어나며 피맛골이 먹자골목으로 발전했다. 서민들은 종로의 고급 요릿집 대신 피맛골의 저렴한 국밥집과 선술집을 찾았고, 이는 골목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했다. 특히 “빈대떡”과 “국밥”은 피맛골의 초기 명물로, 가난한 백성들의 허기를 달래주었다. 1890년대 한양을 방문한 영국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Isabella Bird)는 “종로 뒷골목에서 나는 음식 냄새가 매혹적”이라며 피맛골을 묘사했다.

비하인드 둘: 주막의 비밀 저항
1880년대, 피맛골 주막에서 비밀 저항 모임이 열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 상인이 일본 상인과의 불공정 거래에 분노하며 동료들을 모아 “조선 장사를 살리자”고 다짐했다. 이들은 주막에서 술을 나누며 계획을 세웠지만, 일본 경찰에 발각될 뻔했다. 상인은 “그저 술자리”라며 빠져나갔고, 이 비밀 모임은 피맛골이 개항기의 혼란 속에서도 조선인의 자존심을 지킨 공간임을 보여준다.

3. 일제강점기: 피맛골의 성장과 억압 속 생존
일제강점기(1910~1945)는 피맛골이 본격적인 먹자골목으로 성장한 시기다. 일본은 종로를 상업 중심지로 개발하며 대로변에 일본 상점을 세웠지만, 피맛골은 조선 상인들의 터전으로 남았다. 1920년대 피맛골은 선술집, 국밥집, 빈대떡 집이 밀집한 서민의 해방구로 자리 잡았다. 특히 “외상술”은 피맛골의 독특한 문화로, 돈 없는 손님이 시계나 물건을 맡기고 술을 마시는 풍습이었다.
일본은 피맛골을 “불결한 골목”으로 간주하며 단속했지만, 조선인들은 이를 저항의 공간으로 삼았다. 1930년대 항일운동가들이 피맛골 주막에서 비밀리에 모임을 가졌고,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정보를 주고받았다. 1943년 가수 한복남의 “빈대떡 신사”는 피맛골을 배경으로 한 노래로, 가난한 서민의 애환을 담아 큰 인기를 끌었다.

비하인드 셋: 빈대떡 신사의 비밀 기원
1940년대, 피맛골에서 한 여성이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쇼트닝으로 빈대떡을 부친 사건이 있다. 그녀는 “돈 없는 신사를 달래주자”며 저렴한 가격에 팔았고, 이는 “빈대떡 신사” 노래의 영감이 되었다. 일본 경찰이 “불법 장사”로 단속하려 했지만, 상인들이 그녀를 숨겨줬다. 이 비밀스러운 시작은 피맛골이 억압 속에서도 생존의 맛을 낳았음을 보여준다.

 
4. 해방과 한국전쟁: 피맛골의 재건과 전성기
1945년 해방 이후 피맛골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일본 상인들이 떠나며 골목은 조선인의 손으로 돌아왔고, 주점과 음식점이 늘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서울이 점령되며 피맛골은 큰 타격을 받았다. 건물이 파괴되고 상인들은 피난길에 올랐다.
전쟁 중에도 피맛골의 정신은 이어졌다. 부산 피난지에서 상인들은 빈대떡과 국밥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고, 1953년 휴전 이후 서울로 돌아와 골목을 재건했다. 1950년대 피맛골은 “서민의 위로처”로 전성기를 맞았다. 생선구이, 해장국, 빈대떡이 명물로 자리 잡았고,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골목이 되었다.

비하인드 넷: 피난지의 비밀 주막
1951년 부산에서 한 피맛골 상인이 미군에게 빈대떡을 판 사건이 있다. 그는 “전쟁의 허기를 달래주자”며 통조림을 대가로 받았고, 이를 동료들과 나눴다. 이 비밀 거래는 피맷골이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생존과 연대의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5. 1960~80년대: 경제 성장과 피맛골의 황금기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 개발은 피맛골을 크게 변화시켰다. 산업화로 도시 인구가 늘며 먹자골목 수요가 폭발했고, 1970년대 피맛골은 현대식 간판과 조명을 갖춘 주점으로 번성했다. “청진옥”의 해장국, “대림식당”의 생선구이, “미진”의 빈대떡은 피맛골의 전설로 자리 잡았다. 연간 방문객은 수십만 명에 달했고, 골목은 “서울의 밤”을 상징했다.
1980년대 유신체제와 민주화 운동은 피맛골에 새로운 의미를 더했다. 낮에 최루탄을 피해 시위하던 학생들이 밤이면 피맛골 주막에 모여 민주주의를 논했다. “외상술”은 이 시기 학생들의 상징이었고, 주인은 시계를 맡아 술을 내줬다.

비하인드 다섯: 민주주의의 비밀 주막
1980년 5.18 직후, 피맛골 주막에서 비밀 모임이 열렸다. 한 학생이 “광주의 진실”을 알리며 동료들을 모았지만, 경찰에 발각될 뻔했다. 주인이 “그저 술손님”이라며 숨겨줬고, 이 비밀 모임은 피맛골이 민주화의 숨은 무대였음을 보여준다.

6. 1990~2000년대: 재개발과 피맛골의 몰락
1990년대 경제 호황은 피맛골에 상업적 변화를 가져왔다. 1995년 종각역과 연결되며 접근성이 좋아졌고,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다. 그러나 2003년 이명박 서울시장의 “종로 르네상스” 계획으로 피맛골은 재개발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청계천 복원과 맞물린 이 프로젝트는 피맛골을 “낡은 골목”으로 간주하며 철거를 강행했다.
2008년 르메이에르 빌딩이 들어서며 피맛골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청진옥”, “미진” 같은 맛집은 빌딩 1층으로 옮겼지만, 옛 정취는 잃었다. 2019년 “대림식당”이 문을 닫으며 피맛골의 600년 역사는 막을 내렸다.

비하인드 여섯: 재개발의 비밀 반발
2003년 재개발 발표 후, 상인들이 비밀리에 반발했다. 그들은 “피맛골을 지키자”며 시위를 준비했지만, 서울시의 회유로 무산되었다. 한 상인은 “600년 역사를 팔았다”고 한탄했고, 이 비밀 저항은 피맛골의 몰락 뒤에 숨은 아픔을 보여준다.

7. 2020년대와 현재: 추억 속 피맛골과 부활의 꿈
2025년 3월 현재, 피맛골은 물리적 골목은 사라졌지만 추억 속에서 살아있다. 코로나19 팬데믹(2020~2022) 이후 “온라인 피맛골 프로젝트”가 화제가 되었고, 옛 맛집들이 밀키트로 부활했다. 2011년 뮤지컬 “피맛골 연가”와 2013년 “서울 미래유산” 지정은 피맛골의 가치를 되살렸다.
기후 변화와 물가 상승으로 전통 음식 재료가 귀해졌지만, “청진옥” 같은 맛집은 여전히 명맥을 잇는다. 2024년 종로구는 “피맛골 테마 거리” 조성을 계획하며 골목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비하인드 일곱: 팬데믹 속 비밀 배달
2020년, 한 피맛골 상인이 비밀리에 빈대떡을 배달한 사건이 있다. 그는 “골목의 맛을 잊게 할 수 없다”며 몰래 주문을 받았지만, 방역 당국에 발각되었다. 상인은 벌금을 냈지만, “피맛골은 죽지 않았다”고 외쳤다. 이 사건은 피맛골의 생존 의지를 보여준다.

결론
피맛골의 역사는 조선 시대 피마길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의 먹자골목, 현대의 재개발과 몰락으로 이어졌다. 금지된 집회, 주막 저항, 빈대떡 기원, 민주주의 모임, 재개발 반발, 팬데믹 배달 같은 비하인드는 피맛골이 단순한 골목이 아님을 보여준다. 2025년 오늘, 피맛골은 추억 속에서 서울의 밤을 밝히던 서민의 공간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미래로 잇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다음에 빈대떡을 먹을 때, 그 뒤에 숨은 역사를 떠올려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