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미팅 좀 잡아줘.”
“야, 너는 무슨 미팅만 하냐?”
한때 대학가에서는 이런 대화가 일상처럼 오갔다. 미팅은 단순한 소개팅과는 달랐다. 낯선 남녀가 한두 명씩 만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 3:3부터 5:5까지 단체로 만나 어울리는 형식이었다. 누군가는 연애를 위해, 누군가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또 누군가는 그저 술자리를 즐기기 위해 미팅을 했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에게 미팅 이야기를 꺼내면 반응이 미지근하다. 소개팅 앱이 일상화되면서 굳이 단체 미팅을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팅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한국 미팅 문화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변천 과정과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함께 풀어보자.
1. 1970~1980년대: 대학가에서 피어난 미팅 문화
미팅 문화는 1970년대 대학가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당시만 해도 남녀공학이 많지 않았고, 남학생과 여학생이 어울릴 기회가 제한적이었다. 학과 수업에서 만날 수 없는 이성을 알기 위해 학생들은 ‘단체 미팅’을 고안해냈다.
이때의 미팅은 오늘날처럼 카페나 바에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주로 공원이나 한강 둔치에서 치러졌다.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으며 서로를 알아가는 방식이었다. 자연 속에서 어울리다 보니 더 친밀감이 생겼고, 이런 미팅이 연애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비하인드 스토리:
초창기 미팅에서는 ‘여성 참가자 모으기’가 큰 숙제였다. 여대생들은 미팅에 대한 부담감이 컸기 때문에 쉽게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팅을 주선하는 남학생들은 온갖 전략을 동원했다. 가장 흔한 방법이 “우리과에 훈남 많아!“라는 말로 여학생들을 유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미팅 장소에 가면 “그 훈남 어디 갔어?“라는 질문이 쏟아지곤 했다.
2. 1990년대: 미팅의 전성기, 연애와 우정의 장
1990년대는 미팅의 황금기였다. 대학뿐만 아니라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미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과팅’(과 + 미팅)이라는 개념도 자리 잡았다. 대학 축제 시즌에는 한 번에 여러 개의 과팅이 열리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커플이 생기기도 했다.
이 시기의 미팅은 보통 술집이나 카페에서 진행되었으며, 다양한 게임이 유행했다.
• ‘운수 좋은 날’ 게임: 각자 종이에 숫자를 적고, 같은 숫자를 적은 사람이 커플이 되는 방식.
• ‘산 넘어 산’ 게임: 돌림판을 돌려 벌칙을 정하는 방식으로, 다소 과감한 스킨십이 포함되기도 했다.
• ‘애칭 짓기’ 게임: 즉석에서 커플이 된 두 사람이 서로의 애칭을 정하는 게임.
미팅을 통해 연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미팅 100번 하면 연애할 수 있다”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비하인드 스토리:
1990년대에는 ‘미팅용 사진’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미팅에 나가기 전, 남자들은 가장 잘 나온 사진을 여학생들에게 보여줬고,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실물과 사진이 다를 경우 “저 사람 누구야?“라며 혼란이 빚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일부 학생들은 “사진보다 실물이 낫다”는 말이 최고의 칭찬이었다.
3. 2000년대: 미팅의 변화, 인터넷과 모바일의 등장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팅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온라인을 통해 미팅을 주선하는 문화가 등장했다. ‘사랑의 서포터즈’ 같은 미팅 커뮤니티가 유행했고, 특정 대학 커뮤니티에서도 미팅 신청을 받았다.
이 시기에 ‘스피드 데이팅’이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여러 명을 만나는 방식으로, 미팅보다 더 빠르게 인연을 찾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소개팅 앱이 등장하면서 미팅 문화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개별적인 맞춤형 만남이 가능해지면서 굳이 여러 명이 한 번에 만나는 미팅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2000년대 초반에는 ‘미팅 보증제’라는 흥미로운 제도가 있었다. 주최자가 미팅에 나오는 남녀의 퀄리티를 보장하지 못하면 술값을 내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참가자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면 “이게 미팅 보증제냐?“라며 술값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4. 2010년대 이후: 미팅의 쇠퇴와 개인 맞춤형 만남
2010년대 이후, 미팅은 점점 줄어들었다. 소개팅 앱과 SNS가 발달하면서 굳이 단체 미팅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사람들은 취향에 맞는 상대를 개별적으로 만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 대신 ‘취미 기반 모임’이 인기를 끌었다. 와인 모임, 보드게임 모임, 등산 모임 등이 자연스럽게 미팅을 대체했고, 이런 모임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비하인드 스토리:
최근에는 ‘미팅 부활 프로젝트’ 같은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대학 내에서 전통 미팅을 다시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진행되는 행사인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지 않다. 과거 미팅에 대한 향수를 가진 기성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이들은 ‘굳이 모르는 사람을 단체로 만나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결론: 미팅은 사라졌을까?
미팅 문화는 분명 예전만큼 활발하지 않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형식이 변하고 있을 뿐이다. 전통적인 미팅 대신, 취미 기반 모임이나 소규모 네트워킹 이벤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과거처럼 대학가에서 미팅을 주도적으로 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지만, 미팅이 남긴 문화적 흔적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어쩌면 미래에는 VR이나 AI 기술을 활용한 ‘가상 미팅’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형, 미팅 좀 잡아줘’라는 말이 들리지 않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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