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 일상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그곳, 다이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다이소는 생활의 일부가 됐죠. 2023년 기준으로 연 매출 3조 4604억 원, 매장 수 1500호점을 돌파한 이 거대한 국민 가게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그 뒤엔 창업자 야노 히로타케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숨겨진 비하인드가 가득하답니다. 자, 시간 여행 떠나볼까요?
다이소의 씨앗 일본에서 시작된 100엔 숍
다이소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시작돼요. 1972년 야노 히로타케라는 인물이 ‘야노 쇼텐’이라는 작은 가게를 열었죠. 당시 일본은 경제 호황 속에 소비 문화가 꽃피우던 시기였지만, 야노의 인생은 그리 순탄치 않았어요. 사실 야노는 사업가라기보다는 실패와 좌절을 밥 먹듯 겪은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그가 다이소라는 거대한 제국을 세우기까지, 그 과정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죠. 야노는 원래 처가 사업을 돕다가 망하며 빚더미에 앉았어요. 심지어 장인에게 빌린 돈, 무려 10억 엔에 달한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그걸 날리고 도쿄로 야반도주까지 했다고 해요. 그러다 의사인 형의 도움으로 고향에 돌아와 다시 시작했지만, 이번엔 자재를 쌓아둔 창고에 불이 나는 바람에 또 망했죠. 이때도 아버지가 구원투수로 나서 돈을 빌려줬다고 하니, 야노의 가족은 그야말로 그의 ‘재기 프로젝트’ 후원자였던 셈이에요. 이쯤 되면 “이 사람 사업 계속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법도 하죠.
하지만 야노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여러 번 넘어졌지만 그때마다 깨달음을 얻었죠. 그는 값비싼 물건을 팔아 큰돈을 버는 대신, 누구나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저렴한 상품을 떠올렸어요. 그래서 1972년 야노 쇼텐을 열고 트럭에 물건을 싣고 다니며 100엔짜리 잡화들을 팔기 시작했어요. 이게 바로 다이소의 전신이에요. “100엔에 이걸 살 수 있다고?”라는 놀라움이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죠. 그는 고정된 가게를 두는 대신 유랑하듯 이곳저곳을 돌며 판매했는데, 이게 또 의외로 대박을 쳤어요. 왜냐하면 당시엔 지금처럼 체인점 개념이 흔치 않았고, 그의 유연한 판매 방식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거든요. 여기서부터 야노의 사업가 DNA가 조금씩 깃들기 시작한 거예요. 처음엔 플라스틱 그릇, 옷걸이, 간단한 문구류 같은 소소한 물건들이 주를 이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일본 다이소의 성장 그리고 뜻밖의 위기
야노의 아이디어는 단순했지만 파격적이었어요. 당시 일본엔 이미 100엔 숍이 있었지만, 야노는 품질과 다양성을 강조했어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다이소 산업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체인점을 확장했어요. 1990년대엔 일본 전역에 매장이 퍼졌고, 2000년대 초반엔 해외 진출까지 노렸죠. 다이소라는 이름은 ‘큰 창고’라는 뜻인데, 정말 이름처럼 뭐든 다 있는 창고 같은 가게가 됐어요. 1991년엔 일본 내 100호점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했죠. 이때 야노는 100엔이라는 가격을 고집하면서도 상품 수를 늘려 무려 3만 가지에 달하는 아이템을 판매했어요. 이건 지금도 다이소의 강점으로 이어지고 있죠. 심지어 “다이소에 가면 뭐든 해결된다”는 말이 일본에서도 유행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비하인드가 있어요. 다이소가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건 아니었어요. 1980년대 말 일본 경제가 거품 붕괴로 흔들리면서 다이소도 위기를 맞았어요.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자 싸구려 잡화 가게라는 이미지가 문제 됐죠. 심지어 일부 고객은 “100엔짜리 물건이 너무 저렴해서 오히려 불안하다”고 불평하기도 했어요. 이때 야노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어요. 품질을 조금 더 높이고, 디자인도 신경 써서 “저렴하지만 괜찮은 물건”이라는 인식을 심어줬어요. 예를 들어, 그전엔 플라스틱 수저가 쉽게 부러졌다면 이제는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고 색상도 다양하게 추가했죠. 이 전략이 대성공을 거두며 다이소는 일본의 대표 100엔 숍으로 자리 잡았어요. 또 하나 재밌는 건, 야노가 직원들에게 “고객이 물건을 보고 웃으면 성공이다”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실제로 다이소엔 기발하고 엉뚱한 물건들이 많아서 가게를 돌다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곤 하죠.
대한민국 상륙 아성다이소의 탄생
자, 이제 이야기가 한국으로 넘어와요. 다이소가 한국에 처음 들어온 건 1997년이에요. 일본 다이소와 손잡고 한국 기업 아성HMP가 합작으로 ‘아성다이소’를 설립했죠. 첫 매장은 서울 천호동에 있는 아스코이븐프라자 1호점(지금의 다이소 천호점)이었어요. 당시 한국은 IMF 외환위기로 경제가 휘청이던 때라, 저렴한 생활용품을 파는 다이소는 사람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였어요. 1000원에 양말을 사고, 2000원에 주방용품을 살 수 있다는 게 그 시절엔 혁명적이었죠. 특히 IMF로 가계가 어려워진 주부들이 다이소의 단골이 되면서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어요.
하지만 여기에도 비하인드가 숨어 있어요. 처음엔 일본 다이소가 지분을 가지고 운영에 깊이 관여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아성HMP의 박정부 회장이 “이건 우리 스타일로 해야 한다”며 독립적인 운영을 밀어붙였어요. 2001년 아성다이소는 일본 다이소와 결별하고 완전히 독자 브랜드로 변신했죠. 일본 다이소가 “100엔”을 고집했다면, 한국 다이소는 1000원, 2000원, 5000원 등 가격대를 유연하게 조정하며 한국 소비자 입맛에 맞췄어요. 이 결정이 신의 한 수였죠. 일본 다이소가 고정된 가격 정책으로 한계를 겪을 때, 한국 다이소는 다양한 가격대와 상품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어요. 이후 아성다이소는 일본 다이소를 매출로 뛰어넘으며 “학생이 스승을 이겼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죠. 사실 이 결별 뒤엔 약간의 갈등도 있었다고 해요. 일본 측이 “다이소라는 이름 쓰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결국 상표권 협상으로 한국에서 다이소라는 이름을 지켜냈다는 후문이에요.
실패와 성공의 롤러코스터 다이소의 도전
다이소가 국민 가게로 자리 잡기까지 실패도 많았어요. 대표적인 게 2000년에 일본 다이소에서 출시한 ‘Contrarotator’라는 드럼세탁기예요. 드럼을 두 개로 나눠 반대 방향으로 돌며 세탁력을 높이겠다는 야심 찬 아이디어였죠. 근데 이게 너무 복잡해서 제작비가 치솟았고, 가격이 무려 1000파운드(약 170만 원)를 넘었어요. 100엔 숍에서 170만 원짜리 세탁기를 판다는 게 말이 되나요? 게다가 내구성도 약해서 자주 고장 났죠. 결국 5년 만에 단종됐고, 다이소는 큰 손해를 봤어요. 이 사건은 “다이소가 생활용품 외엔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죠. 직원들 사이에선 “세탁기 만든다고 정신없던 시절”이라며 농담 삼아 회자되기도 했어요.
반면 한국 다이소는 실패를 딛고 혁신을 거듭했어요. 2010년대 들어서면서 품질 관리에 더 신경 쓰고, 2015년엔 멤버십 제도를 도입했죠. 2018년엔 독자 앱을 만들어 디지털 시대에 발맞췄고, 2020년대엔 다이소몰과 샵(#)다이소 같은 배송 서비스까지 확장하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드는 브랜드로 진화했어요. 특히 코로나 팬데믹 때 집콕 생활이 늘어나면서 다이소의 DIY 용품과 소형 가전이 불티나게 팔렸어요. 예를 들어, 5000원짜리 미니 선풍기나 3000원짜리 정리함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하니, 다이소의 저력이 대단하죠. 이때 다이소 직원들은 “물건 채우기도 바빠서 정신없었다”고 회상할 정도였어요.
다이소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비하인드
2025년 지금, 다이소는 단순한 잡화점이 아니에요.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심지어 골프용품까지 팔며 뷰티 성지이자 생활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났어요. 아모레퍼시픽 같은 대기업이 다이소에 입점하고, 대웅제약이 건강기능식품을 납품하는 걸 보면 다이소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지죠. 최근엔 틱톡 공식 채널을 열어 10~20대와 소통하며 트렌드도 놓치지 않고 있어요. 틱톡에서 “다이소 꿀템 추천”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젊은 층 고객도 대거 유입되고 있죠.
그런데 재밌는 비하인드가 하나 더 있어요. 다이소 과자에 대해 “유통기한이 임박했다”거나 “품질이 낮다”는 오해가 있었는데, 조사해보니 오히려 편의점보다 유통기한이 길고, 같은 브랜드라도 중량을 조정해 더 저렴하게 판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예를 들어, 빼빼로 오리지널은 다이소(46g, 1000원)가 편의점(54g, 1800원)보다 그램당 가격이 쌌죠. 심지어 다이소에서 파는 초코파이는 유통기한이 6개월 이상 남은 제품만 납품받는다고 하니, 가성비 신화의 비결이 여기에 있었던 거예요. 이런 꼼꼼한 전략 덕분에 “다이소 과자 사도 괜찮아요?”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당연하지!”라고 답할 수 있게 됐죠.
또 하나의 비하인드는 다이소의 물류 시스템이에요. 전국 1500개 매장에 매일 물건을 공급하려면 엄청난 물류 네트워크가 필요하잖아요. 다이소는 충청도에 거대한 물류 센터를 두고, 하루에도 수십만 개 상품을 실시간으로 관리해요. 직원들 사이에선 “물류 센터가 다이소의 심장”이라는 말이 돌 정도예요. 한번은 물류 시스템 오류로 특정 지역에 물건이 제때 안 갔는데, 그날 고객들 항의가 빗발쳤다고 해요. 그만큼 다이소가 우리 삶에 깊이 뿌리내렸다는 뜻이겠죠.
다이소가 남긴 것
다이소는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예요. 야노 히로타케의 실패와 재기, 아성다이소의 독립과 혁신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비범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줘요. 여러분은 다이소에서 뭘 제일 좋아하시나요? 저는 다이소에 갈 때마다 “이걸 천 원에 살 수 있다니!” 하며 신나는데, 그게 다이소가 주는 작은 행복 같아요. 앞으로 다이소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을지 기대되네요. 혹시 여러분의 다이소 추천템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다음엔 그걸 주제로 또 이야기 나눠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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