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은 콩을 발효시켜 만든 한국의 대표적인 장류로, 깊고 구수한 맛으로 밥상 위를 풍요롭게 한다. 국, 찜, 나물에 빠질 수 없는 이 양념은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담은 상징이다. 그 역사는 고대 한반도의 발효 문화에서 시작해 중국과의 교류, 조선의 황금기, 일제강점기의 억압, 그리고 현대의 세계적 확산까지 이어진다. 된장은 생존의 지혜와 공동체의 협력, 때로는 권력과 갈등 속에서 진화하며 한국 요리의 영혼으로 자리 잡았다.
1. 기원: 고대 한반도와 발효의 시작
된장의 기원은 고대 한반도의 농경 사회에서 발효 음식이 태동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000년경 청동기 시대부터 콩(Soybean, Glycine max)은 한반도에서 재배되었다. 2021년 한국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경기도 여주 유적에서 기원전 1500년경의 탄화된 콩과 발효 흔적이 발견되었고, 이는 된장의 초기 형태로 추정된다. 당시 사람들은 콩을 삶아 자연 발효시키거나 소금과 섞어 저장하며, 장기 보존을 위한 음식을 만들었다.
『삼국사기』에는 삼국 시대(기원전 57년~서기 668년) 고구려 사람들이 “콩으로 만든 장”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장(醬)“이라 불리며, 된장의 전신으로 보인다. 고대 한반도에서는 쌀과 콩이 주식이었고, 발효는 곡식을 부패 없이 보존하는 생존의 기술이었다. 초기 된장은 소금과 콩을 섞어 발효시킨 소박한 형태로, 제사와 공동체 식사에 사용되었다.
비하인드 하나: 금지된 신의 장
기원전 500년경 백제 어느 부족에서 된장과 얽힌 전설이 있다. 한 주술사가 신에게 바칠 콩을 발효시켜 장을 만들었는데, 이는 신성한 곡식을 훼손한 행위로 간주되었다. 부족장은 그를 처벌하려 했지만, 주술사는 “발효된 장이 신의 힘을 더한다”고 주장하며 몰래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이 사건은 처벌로 끝났지만, 된장이 금지된 의식에서 민간으로 스며든 첫 사례로 전해진다.
2. 고려 시대: 불교와 된장의 성장
고려 시대(918~1392)는 된장이 정착한 시기다. 불교가 국교로 자리 잡으며 육식이 억제되었고, 콩으로 만든 장은 고기 없이도 깊은 맛을 내는 조미료로 주목받았다. 『고려사』에는 사찰에서 “콩장”을 만들어 나물과 밥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는 “된장”의 초기 이름으로 보인다. 사찰 음식의 소박함과 영양을 충족시키는 된장은 스님들의 필수품이었다.
민간에서는 된장이 “메주”라는 형태로 발전했다. 고려 말 몽골의 영향으로 발효 기술이 정교해졌고, 콩을 삶아 뭉친 메주를 짚에 묶어 자연 발효시키는 방법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소금물이 첨가되며 간장과 분리되었고, 남은 고형물이 된장으로 완성되었다. 된장은 국을 끓이거나 반찬을 무치는 데 쓰이며, 서민의 식탁에 깊이 뿌리내렸다.
비하인드 둘: 된장 도둑의 운명
11세기 평양의 한 사찰에서 된장과 얽힌 이야기가 있다. 한 농부가 사찰의 된장을 훔쳐먹다 발각되었고, 스님은 “탐욕의 업”이라며 벌을 내렸다. 그러나 농부는 “배고프다”고 호소했고, 스님은 처벌 대신 된장을 나눠줬다. 이 사건은 “된장 나눔” 설화로 전해지며, 된장이 생존의 음식이었음을 보여준다.
3. 조선 시대: 유교와 된장의 전성기
조선 시대(1392~1897)는 된장이 전성기를 맞은 시기다. 유교 예법 아래 제사와 잔치가 중요해지며, 된장은 국, 찜, 나물에 필수적인 양념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대에 궁중에서 “된장국”이 언급되며, 왕실의 건강식으로 사랑받았다. 『동국문헌비고』에는 민간에서 메주를 발효시켜 된장을 만드는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는 된장 제조가 가정마다 보편화되었다. 양반들은 고급 된장을 만들어 손님을 접대했고, 서민들은 소박한 된장으로 밥상을 차렸다. 이때 “집된장”과 “간장”이 분리되며, 된장은 구수한 맛과 짠맛이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흉년이 잦아지며 콩이 귀해졌고, 된장은 다시 귀한 음식으로 변했다.
비하인드 셋: 된장 도둑의 비극
조선 중기, 한양의 한 양반 집에서 된장과 얽힌 사건이 있다. 한 하인이 밤에 된장 항아리를 훔치다 발각되었고, 양반은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매질했다. 하인은 도망쳤지만, 굶주림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사건은 된장이 계층 간 갈등의 상징이었음을 보여주며, “된장 도둑” 설화로 남았다.
4. 일제강점기: 된장의 억압과 저항
일제강점기(1910~1945)는 된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시기다. 일본은 조선의 농업을 식민지 경제로 편입시키며 콩 재배를 통제했다.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으로 쌀 수탈이 본격화되자, 콩은 부차적인 작물로 밀려났다. 된장은 귀해졌고, 일본은 대체품으로 “미소(味噌)“를 강요했다. 일본 미소는 단맛이 강했지만, 한국인들은 된장의 구수한 맛을 잊지 못했고, 몰래 메주를 만들어 생산을 이어갔다.
일본은 된장을 “조선의 향”이라며 일부 수출했지만, 이는 식민지의 자원을 착취하는 도구였다. 1930년대 경성의 주점에서는 된장국이 안주로 팔렸고, 이는 서민들의 저항심을 상징했다.
비하인드 넷: 메주의 비밀 저항
1938년 평안도 어느 마을에서 한 농부가 된장을 독립군에게 공급한 사건이 있다. 그는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밤에 메주를 발효시켰고, 이를 산속으로 날랐다. 결국 체포되어 처형당했지만, 이 사건은 “된장 의사”로 전해지며 된장이 저항의 음식이었음을 보여준다.
5. 해방과 한국전쟁: 생존의 된장
1945년 해방 이후 된장은 민간으로 돌아왔다. 한국전쟁(1950~1953) 당시 피난민들은 콩을 발효시켜 된장을 만들어 밥에 뿌려 먹으며 배고픔을 달랬다. 전쟁으로 식량이 부족했지만, 콩은 소량으로도 강한 맛을 내 생존의 필수품이었다. 미군의 군수품에서 들기름과 콩기름이 유입되었지만, 한국인들은 된장을 더 선호했다.
전쟁 후 복구 과정에서 된장은 시장과 주점에서 판매되었다. 1950년대 KBS 라디오 광고에 “구수한 된장”이 등장하며, 된장은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비하인드 다섯: 미군과 된장의 교환
1952년 부산 피난지에서 한 할머니가 미군에게 된장을 건넨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메주로 만든 된장을 통조림과 교환했고, 미군은 “Salty Bean Paste”라며 감탄했다. 이 교환은 된장이 전쟁 속에서도 따뜻한 교류의 매개체였음을 보여준다.
6. 1960~80년대: 경제 성장과 된장의 대중화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 개발은 된장의 대중화를 가속화했다. 새마을운동으로 콩 재배가 장려되었고, 메주 생산이 늘었다. 1970년대에는 기계식 발효 기술이 도입되며 된장 생산량이 확대되었고, “된장국”과 “된장찌개”가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에는 된장이 학교 앞 분식집과 시장에서 인기였다. “된장 덮밥”은 값싼 가격으로 노동자들에게 사랑받았고, “고급 된장”은 중산층의 선물로 유행했다. 이 시기 된장은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비하인드 여섯: 된장 장수의 비밀 레시피
1979년 서울 어느 시장에서 한 장수가 된장에 꿀을 섞은 독특한 레시피를 선보였다. 그는 “구수함이 더 깊어진다”고 했지만, 경쟁 장수들은 비웃었다. 그러나 손님들이 열광하며 “꿀 된장”이 유행했고, 이 레시피는 다른 시장으로 퍼졌다. 이 사건은 된장의 창의적 변화를 보여준다.
7. 1990~2000년대: 상업화와 세계로의 확장
1990년대 경제 호황과 함께 된장은 상업적 변화를 맞았다. 대기업이 된장을 공장 제조로 대량 생산했고, 일본산 미소와 경쟁하며 “국내산 된장”이 주목받았다. 한류 붐으로 된장은 해외로 퍼졌다. 2000년대 미국과 일본의 한식당에서 “Doenjang”으로 소개되었고, 유튜버들이 “Korean Fermented Paste” 레시피를 공유하며 글로벌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 시기 된장의 변형도 늘었다. “저염 된장”, “유기농 된장” 같은 프리미엄 제품이 개발되었고, 건강을 중시하는 트렌드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상업화 과정에서 “가짜 된장” 논란이 불거지며 품질 문제가 대두되었다.
비하인드 일곱: 된장 사기의 파문
2007년 한 업체가 “100% 국내산”이라 홍보했지만, 중국산 콩을 섞은 사실이 드러났다. 소비자들이 항의하며 소송이 벌어졌고, 업체는 벌금을 물었다. 이 사건은 된장의 상업적 성장 뒤에 숨은 어두운 비하인드를 드러냈다.
8. 2020년대와 현재: 된장의 재정의
2025년 2월 현재, 된장은 건강과 다양성을 추구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이 늘며, 된장은 밀키트와 유튜브 레시피로 부활했다. “저당 된장”, “비건 된장”이 인기를 끌고, 캠핑 붐으로 “수제 된장”이 재조명받았다. 지역 특산물(문경 콩, 제주 콩)을 활용한 된장도 주목받는다.
한류의 영향으로 된장은 해외에서도 사랑받고 있다. 2023년 미국 푸드 페스티벌에서 “Doenjang Stew”가 히트를 쳤고, 일본에서는 “K-된장”으로 변형되어 판매된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콩 수확이 불안정해지며, 된장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비하인드 여덟: 된장 금지령 소동
2024년 한 지역 학교에서 “과다 나트륨”을 이유로 된장 급식이 금지되었다. 학부모들은 “밥맛을 뺏는다”며 반발했고, 결국 금지령은 철회되었다. 이 소동은 된장이 단순한 양념을 넘어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음식임을 보여준다.
결론
된장의 역사는 고대 한반도의 발효에서 시작해 고려의 불교 음식, 조선의 전성기, 현대의 글로벌 양념으로 이어졌다. 그 비하인드에는 금지된 신의 장, 저항의 맛, 미군과의 교환, 상업적 스캔들이 얽혀 있다. 2025년 오늘, 된장은 한국 요리의 영혼을 넘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구수함 뒤에 숨은 이야기를 간직한 채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다음에 된장을 맛볼 때, 그 한 숟갈 뒤에 숨은 역사를 떠올려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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