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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의 역사: 대한민국 최대 테마파크의 탄생과 성장

알구 보면

by ALGOO_M 2025. 2. 2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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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는 대한민국 경기도 용인시에 자리 잡은 국내 최대 테마파크로,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 꿈의 놀이터다. 놀이기구, 동물원, 정원, 그리고 계절별 축제가 어우러진 이곳은 단순한 유원지를 넘어 한국 레저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1976년 ‘용인 자연농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에버랜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자연과 인간, 기술과 상상력이 얽힌 독특한 여정을 걸어왔다. 그 역사 속에는 창업자의 비전, 시대의 격변, 그리고 숨겨진 비하인드가 가득하다.

1. 기원: 자연농원의 탄생과 이병철의 꿈
에버랜드의 이야기는 1960년대 후반,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원대한 비전에서 시작된다. 1968년, 그는 황폐한 국토를 푸르게 가꾸고 후세에 남기겠다는 신념으로 용인시 포곡읍 일대 1500만㎡(약 450만 평)에 달하는 땅을 매입했다. 당시 한국은 6·25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던 시기로,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남짓에 불과했다. 이병철은 이곳을 농업과 자연의 복합 공간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1976년 4월 17일, ‘용인 자연농원’이 정식 개장하며 그의 꿈이 현실이 되었다. 입장료는 성인 600원, 어린이 300원으로, 당시 서울 전철 요금(40원)과 비교해도 저렴한 가격이었다.
자연농원은 이름 그대로 농원이었다. 밤나무, 복숭아나무 등 과수원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사자, 사슴, 멧돼지 등 200여 종의 동물이 농원에 살았다. 초기 놀이기구는 단 9개에 불과했으며, ‘제트열차’ 같은 롤러코스터가 주된 볼거리였다. 이병철의 목표는 단순한 놀이공원이 아니라, 농업 기술 보급과 자연 보존을 통한 국토 개발의 모범 사례였다. 개장 첫해 돼지고기 780톤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1979년에는 쿠웨이트로 살구 넥타 4000상자를 보내며 농업 중심의 성과를 냈다.

비하인드 하나: 개장 전의 비밀 프로젝트
자연농원이 개장하기 전, 이병철은 이곳을 비밀리에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1970년대 초, 그는 삼성 직원들에게 “외부에 절대 말하지 말라”며 용인 땅에서 묘목 육성과 양돈 사업을 진행하도록 지시했다. 당시 직원들은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농업 실험이 아니라, 이병철의 장기적인 비전을 위한 첫걸음임을 알지 못했다. 한 직원은 “회장님이 밤낮으로 용인에 가셨다”며 그의 집념을 회고했다. 이 비밀스러운 시작은 에버랜드가 단순한 테마파크가 아닌, 국가 재건의 꿈에서 태어났음을 보여준다.

2. 1980년대: 레저 문화의 장으로 변신
1980년대에 들어서며 자연농원은 본격적인 레저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1981년 국내 최초 후룸라이드(Flume Ride)가 도입되었고, 1982년 우주관람차, 1983년 바이킹, 1986년 비룡열차가 잇따라 개장하며 놀이기구의 시대가 열렸다. 이는 한국 경제 성장과 맞물린 변화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를 넘어서며 여가 활동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고, 자연농원은 그 중심에 섰다.
1987년에는 국내 최초 눈썰매장이 문을 열었고, 1988년 롤링 X 트레인(현 T 익스프레스의 전신)이 개장하며 스릴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을 끌어모았다. 이 시기 자연농원은 연간 300만~400만 명이 방문하는 인기 명소로 떠올랐다. 그러나 농업 중심의 초기 역할은 점차 축소되었고, 1991년 양돈 사업이 완전히 폐쇄되며 레저 중심 테마파크로의 전환이 완료되었다.

비하인드 둘: 폭설 속의 두 손님
1977년 1월 20일, 개장 1년도 안 된 자연농원은 영하 14도의 한파와 폭설로 손님이 없을 거라 예상하며 조기 마감을 준비했다. 그러나 강원도 속초에서 새벽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온 노부부가 나타났다. “자연농원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볼거리가 많다”는 소문을 듣고 먼 길을 온 이들을 돌려보낼 수 없었던 직원들은 문을 열고 안내했다. 놀이기구는 가동하지 못했지만, 노부부는 눈 덮인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 사건은 에버랜드 역사상 가장 적은 입장객(2명)을 기록한 날로, 직원들 사이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회자된다.

3. 1990년대: 에버랜드로의 재탄생과 팬더 열풍
1996년 3월, 자연농원은 20주년을 맞아 ‘에버랜드’로 이름을 바꿨다. ‘에버(Ever)’는 시간, ‘랜드(Land)’는 공간을 뜻하며, ‘인간’을 더한 ‘3간주의’라는 삼성의 경영철학을 담았다. 이 명칭 변경은 글로벌 테마파크로의 도약을 선언한 결정이었다. 같은 해 ‘글로벌 페어’가 입구에 신설되며 세계 각국의 건축 양식을 재현했고, 1995년에는 AMG 스피드웨이(현 스피드웨이)가 개장했다. 1996년 여름에는 캐리비안 베이 워터파크가 문을 열며 종합 리조트로의 변신을 알렸다.
1994년에는 한·중 수교 기념으로 팬더 커플 ‘밍밍’과 ‘리리’가 에버랜드에 입성했다. 50일 만에 130만 명이 몰리며 팬더 열풍이 불었고, 연간 방문객은 전년 대비 57% 증가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경제가 악화되자 “팬더 사육은 사치”라는 비판이 일며, 1999년 팬더는 중국으로 돌아갔다.

비하인드 셋: 팬더의 비밀 귀환
밍밍과 리리가 떠난 후, 에버랜드는 팬더 재도입을 비밀리에 추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2000년대 초, 삼성 관계자가 중국 측과 접촉했지만, 비용과 외교 문제로 무산되었다. 당시 직원들은 “팬더가 다시 오면 에버랜드가 살아난다”며 기대했지만, 이 계획은 묻혔다. 2020년 푸바오의 입성으로 팬더 열풍이 재현될 때까지, 이 비밀 프로젝트는 직원들 사이에서만 떠돌았다.

 

 
4. 2000년대: 스릴과 테마의 황금기
2000년대는 에버랜드가 스릴과 테마를 결합한 황금기를 맞은 시기다. 2008년 T 익스프레스가 개장하며 아시아 최고 목재 롤러코스터로 주목받았다. 최대 낙하 각도 77도, 속도 104km/h의 이 기구는 연간 100만 명 이상이 탑승하며 에버랜드의 상징이 되었다. 2006년에는 연간 방문객 850만 명을 돌파하며, 개장 30주년을 맞아 ‘에버랜드 리조트’로 거듭났다.
이 시기 아마존 익스프레스(1994년 개장)는 누적 탑승객 5500만 명을 넘어섰고, 사파리 월드(1986년 개장)는 6600만 명을 기록하며 대표 어트랙션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성장 속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다. 2007년 가고일 매직배틀 사고(탑승객 사망), 2008년 독수리 요새 크레인 사고(인부 사망) 등 안전 문제가 터지며 논란이 일었다.

비하인드 넷: T 익스프레스의 비밀 테스트
T 익스프레스 개장 전, 설계팀은 비밀리에 테스트를 진행했다. 2007년 한 직원은 “밤마다 기구를 몰래 돌렸다”며, 소음 민원을 피하기 위해 새벽에 작업했다고 밝혔다. 테스트 중 직원 한 명이 낙하 구간에서 공포에 질려 소리 지른 사건은 팀 내에서 유명한 일화로 남았다. 이 비밀스러운 노력 덕에 T 익스프레스는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5. 2010년대: 디지털 혁신과 푸바오의 시대
2010년대는 에버랜드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며 새롭게 도약한 시기다. 2015년 ‘스마트 줄서기’ 앱이 도입되며 대기 시간이 단축되었고, 에버랜드 앱은 놀이기구 예약과 공연 정보를 제공하는 필수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2015년 지구마을(1985년 개장)이 5000만 명 탑승 기록을 남기고 철거되며, 추억의 한 페이지를 접었다.
2020년, 아기 판다 푸바오가 입성하며 에버랜드는 다시 열풍에 휩싸였다. 푸바오의 귀여운 모습은 SNS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고, 연간 방문객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회복세를 보였다. 이 시기 포시즌스 가든은 계절별 꽃 축제로 명성을 더했고,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 촬영지(락스빌)로 화제가 되었다.

비하인드 다섯: 푸바오의 비밀 입성
푸바오의 입성은 비밀리에 준비되었다. 2019년, 에버랜드 동물원 팀은 중국 측과 협상하며 “절대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다. 푸바오가 도착한 날, 직원들은 새벽에 몰래 판다舎를 정리했고, 한 직원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이 비밀 작전은 푸바오 열풍의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6. 2020년대와 현재: 자연과 미래의 조화
2025년 2월 현재, 에버랜드는 개장 49주년을 앞두고 자연과 미래를 조화시키며 진화 중이다. 2021년 45주년을 맞아 ‘자연농원 오마주 가든’이 포시즌스 가든에 조성되었고, 130만 송이 봄꽃과 레트로 포토존으로 추억을 되살렸다. 2024년에는 ‘비밀의 은행나무숲 산책’ 프로그램이 개방되며, 50년간 숨겨졌던 15만㎡의 은행나무 군락지가 공개되었다.
코로나19 이후 캠핑과 자연 체험이 인기를 끌며, 에버랜드는 숲속 명상과 트레킹 코스를 강화했다. 푸바오는 여전히 스타로 군림하며, 2023년에는 연간 방문객 700만 명을 회복했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동식물 관리 비용이 증가하고, 안전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투자가 과제로 남아 있다.

비하인드 여섯: 은행나무숲의 비밀 소동
2024년 은행나무숲 개방 전, 지역 주민들은 “에버랜드가 땅을 독점한다”며 반발했다. 1970년대부터 조성된 이 숲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터라 소문이 무성했다. 한 주민은 “귀신이 산다”는 전설을 언급했지만, 에버랜드 측은 “자연 보존의 증거”라며 설득했다. 이 소동은 개방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에버랜드의 숨겨진 자산이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
에버랜드의 역사는 1976년 자연농원에서 시작해 2025년 글로벌 테마파크로 이어졌다. 이병철의 꿈, 폭설 속 노부부, 팬더 열풍, T 익스프레스의 테스트, 푸바오의 입성, 은행나무숲 소동 등 비하인드는 에버랜드가 단순한 놀이터가 아님을 보여준다. 2025년 오늘, 에버랜드는 자연과 기술, 추억과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다음에 에버랜드를 방문할 때, 그 놀이기구와 꽃밭 뒤에 숨은 이야기를 떠올려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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