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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다리기의 역사: 2000년을 이어온 거대한 한판 승부

알구 보면

by ALGOO_M 2025. 2. 13.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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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하나로 나뉜 두 진영.

그 줄을 잡고 온 힘을 다해 끌어당기는 사람들.

그 순간, 마을의 운명이 결정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단순한 힘겨루기 같지만, 줄다리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공동체 의식이며, 풍년을 기원하는 신성한 의례였다. 한국에서는 국가 행사로까지 승격되었고, 심지어 줄다리기 때문에 왕이 바뀐 일도 있었다.

 

어디서부터 이 거대한 놀이가 시작되었을까?

 

1. 줄다리기의 기원: 신들의 싸움에서 시작되다

 

줄다리기의 뿌리를 찾으려면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줄다리기는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기원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학자들은 줄다리기가 신화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고대 인도의 신화에는 신과 악마가 바다의 젖을 짜기 위해 뱀을 이용해 줄다리기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신들은 이 과정을 통해 불로장생하는 신비한 액체 ‘암리타’를 얻었는데, 이것이 곧 생명과 풍요의 상징이 되었다.

 

이와 비슷한 신화는 북유럽 바이킹들에게도 존재한다. 신들이 세상을 창조할 때, 거대한 뱀을 줄처럼 이용해 하늘과 대지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신화들은 줄다리기가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라 생명과 운명을 건 중요한 의례였음을 암시한다.

 

2. 한국의 줄다리기: 왕도 바꾼 신성한 놀이

 

한국에서도 줄다리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신라 시대에는 전쟁 훈련과도 연관이 있었고, 농경사회에서는 풍년을 기원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1) 신라의 줄다리기: 전쟁을 대비한 훈련이었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에서는 줄다리기가 군사 훈련의 일환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병사들은 줄을 잡고 상대 진영을 밀고 당기며 단체 전투력을 기르는 연습을 했다. 실제로 전쟁에서도 적군을 포위하고 한꺼번에 당기는 전략이 사용되었고, 이 때문에 줄다리기는 국가적으로 장려되었다.

 

2) 왕조를 흔든 줄다리기 사건

 

줄다리기는 고려·조선 시대에도 국가적인 행사였다. 그런데, 한 번은 줄다리기가 왕권 교체의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조선 시대, 한양에서 거대한 줄다리기가 열렸다. 당시 백성들은 남쪽 편과 북쪽 편으로 나뉘어 줄을 당겼는데, 북쪽이 이겼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경기 결과를 두고 사람들이 “북쪽이 이겼으니 이제 왕이 바뀌는 게 아니냐?”라며 불길한 예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왕이었던 조선 인조는 이 이야기를 듣고 불안해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정말로 북쪽(청나라)이 쳐들어와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줄다리기의 예언이 맞았다!”라며 술렁였고, 이후 왕실에서는 줄다리기 결과를 지나치게 신경 쓰게 되었다고 한다.

 

3. 지역별 줄다리기: 마을의 운명을 가르는 전통

 

한국의 줄다리기는 지역마다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줄다리기를 통해 마을의 운명을 점쳤다는 것이다.

 

1) 충남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 줄 하나에 3천 명이 달려든다

 

충남 당진에서는 ‘기지시줄다리기’가 열린다. 이 줄다리기는 보통 3천 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다. 줄의 크기도 어마어마해서, 한 번 만들면 무려 40m가 넘고, 무게도 40톤에 달한다.

 

여기서는 암줄과 숫줄이 존재하는데, 암줄이 이기면 그해 농사가 잘 되고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줄을 당긴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줄다리기 전에 마을 사람들이 ‘줄을 결혼시킨다’는 것이다. 줄을 하나로 묶어 부부처럼 만든 후, 신성한 기운을 불어넣는 의식을 진행한다.

 

2) 경북 영산줄다리기 – 일본이 없애려 했던 전통

 

경상북도 영산 지역에서도 대규모 줄다리기가 열린다. 그런데 이 줄다리기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강제로 없애려 했던 전통 중 하나였다.

 

당시 일본은 한국인의 단합을 막기 위해 줄다리기를 금지하려 했다. 줄다리기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공동체의 협동심을 키우고 한데 뭉치게 만드는 중요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몰래 줄을 보관하고 전통을 이어갔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영산줄다리기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4. 세계의 줄다리기: 국경을 넘어선 전통

 

줄다리기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전통이다.

일본 오키나와: 세계에서 가장 큰 줄다리기 행사 중 하나가 열린다. 줄의 길이가 200m를 넘고, 수만 명이 참가한다.

캄보디아 & 베트남: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줄다리기를 한다.

유럽: 영국, 독일 등에서는 줄다리기를 스포츠로 발전시켜 세계 대회까지 개최하고 있다.

 

5. 현대의 줄다리기: 스포츠로 진화하다

 

현재 줄다리기는 전통을 유지하는 동시에 스포츠로도 발전하고 있다. 특히 세계줄다리기연맹(TWIF)이 존재하며, 국제 줄다리기 대회도 열린다.

 

한국에서도 학교 체육대회나 지역 축제에서 줄다리기가 중요한 행사로 남아 있으며, 전통 방식 그대로 진행하는 마을도 많다.

 

6. 결론: 한 줄에 담긴 2000년의 역사

 

줄다리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의례였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행사였으며, 심지어 국가의 운명을 점치는 도구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는 줄다리기를 놀이로 즐기지만, 그 줄 하나에 담긴 의미를 알고 보면 더욱 흥미진진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면, 단순히 줄을 당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 2000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과 함께하고 있음을 기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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