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한국 포장마차의 역사: 길거리에서 시작된 서민들의 낭만

알구 보면

by ALGOO_M 2025. 2. 11. 20:41

본문

728x90
반응형

 

포장마차, 줄여서 포차.

이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비 오는 날 빨간 천막 아래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직장인, 뜨끈한 어묵 국물에 추위를 녹이는 사람들, 또는 친구들과 모여 닭발과 떡볶이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연상될 것이다.

 

포장마차는 단순한 길거리 음식점이 아니다.

그 안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서민들의 애환과 낭만, 그리고 한국 사회의 변화가 담겨 있다.

오늘은 한국 포장마차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우리가 사랑하는 이 작은 공간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는지 알아보자.

 

1. 포장마차의 기원: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포장마차의 원형은 사실 조선 시대에도 존재했다.

그 당시에는 ‘주막’과 같은 정식 술집이 있긴 했지만, 시장 근처나 길거리에서는 이동식으로 간단한 음식을 파는 행상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현대적 개념의 포장마차는 일제강점기(1910~1945년) 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일본에는 ‘야타이(屋台)’라고 불리는 이동식 노점이 있었는데, 이 문화가 자연스럽게 한반도로 전파된 것이다.

특히 1930년대 이후, 서울과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간이식당 형태의 포장마차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주로 국밥, 어묵, 국수 등을 팔았고, 노동자들과 서민들이 주 고객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포장마차는 단순한 음식점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2. 한국전쟁 이후: 가난 속에서 탄생한 서민들의 술집 (1950~1960년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한반도는 폐허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경제 상황은 최악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이때, 간단한 수레나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하는 포장마차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전쟁고아, 실향민, 전역 군인, 실직자 등이 생계를 위해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당시 구하기 쉬운 막걸리, 소주, 어묵, 국수, 두부김치 등을 팔았는데,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술을 마시는 이유도 다양했다.

“오늘도 힘들었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포장마차는 단순한 술집이 아니라, 하소연할 곳이자 위로받는 공간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의 포장마차에서는 술값을 외상으로 달아놓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서로의 얼굴을 알고 지내는 단골들이 많았기 때문에, 주인은 “다음에 벌면 갚으라”며 외상을 허용했다.

이런 정(情) 때문에라도 사람들은 단골 포장마차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3. 산업화 시대: 포장마차의 황금기 (1970~1980년대)

 

196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은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공장이 늘어나고, 도시로 몰려드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직장인과 노동자들을 위한 저렴한 술집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때 포장마차는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이했다.

특히 1970~80년대의 포장마차는 ‘퇴근 후 직장인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이 시기의 포장마차 메뉴를 살펴보자.

어묵, 떡볶이, 순대: 간단한 주전부리이자, 서민들의 대표적인 안주

두부김치: 저렴하면서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메뉴

닭발, 번데기: 값싸고 술안주로 제격

소주와 막걸리: 당시엔 맥주보다 훨씬 저렴한 술

 

포장마차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힘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포장마차에서는 직급과 나이를 따지지 않았다.

“한잔 따라라”라는 말 한마디면 모르는 사람과도 금세 친구가 될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포장마차였다.

 

4. 단속과 변화: 거리에서 실내로 (1990~2000년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는 도시 미관과 위생 문제를 이유로 포장마차 단속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 강남, 명동, 종로 등에서 불법 노점상을 철거하면서, 길거리 포장마차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포차 문화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실내 포차’ 라는 새로운 형태로 변화했다.

이전처럼 길거리에서 천막을 치고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실내에서 포장마차 분위기를 재현한 주점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홍대, 신촌, 강남 등에서 유행한 ‘감성 포차’ 이다.

네온사인과 옛날 느낌의 인테리어, 그리고 소주 한 잔에 어울리는 다양한 안주들이 등장하면서,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5. 2010년대 이후: 뉴트로 감성과 포차의 미래

 

2010년대 들어 한국에서는 ‘뉴트로(Newtro)’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과거의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트렌드 속에서, 포차도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이제 포장마차는 단순한 술집이 아니다.

프랜차이즈 포차(예: 홍대포차, 신포우리만두, 봉구비어) 가 등장하며 대중화

푸드트럭과 야시장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진화

1인 가구 증가로 인해 혼술족(혼자 술 마시는 사람들) 을 위한 작은 포차가 늘어남

 

코로나19 이후로는 배달 포차 개념도 등장했다.

이제는 길거리가 아니어도, 집에서 포장마차 감성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맺으며: 포장마차는 계속된다

 

포장마차는 단순한 길거리 음식점이 아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감정, 그리고 한국 사회의 변화가 담겨 있다.

 

비록 시대가 변하면서 형태는 바뀌었지만,

누군가가 힘든 하루를 위로받고,

낯선 사람과 술잔을 기울이며 친구가 되는 그 공간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 밤, 빨간 천막 아래에서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포차의 역사를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