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동은 서울 성동구에 자리 잡은 동네로, 오늘날에는 “축산물 시장”과 “고기 맛집”으로 유명하지만, 그 뒤에는 수백 년에 걸친 역사의 흐름과 흥미로운 비하인드가 숨어 있다. 조선 시대 말 목장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의 도축장, 근대의 먹자골목, 그리고 현대의 재개발 논란까지, 마장동은 단순한 주거지를 넘어 한국의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생생히 담아낸 살아있는 역사책이다. 이 글에서는 마장동의 기원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 숨겨진 비하인드를 흥미진진하게 탐구해 보겠다.
조선 시대: 말 목장의 시작
마장동의 이름은 “마장(馬場)“에서 유래한다. “마장”은 말을 기르는 목장을 뜻하며, 이는 조선 시대 초기부터 이 지역의 정체성을 규정지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말을 체계적으로 사육했고, 한성부(현재의 서울) 주변에 여러 마장이 설치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1432년)에는 경기도 양주군에 속한 마장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오늘날 마장동의 전신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성부 동부 인창방에 속했던 이곳은 도성에서 가까운 교외로, 말 사육과 군사 훈련에 최적의 장소였다.
마장의 역할과 비하인드
마장은 단순한 목장이 아니었다. 조선은 말을 통해 군사적 우위를 유지했고, 마장은 국가 안보의 핵심 시설이었다. 특히 임진왜란(1592~1598) 당시, 마장에서 길러진 말들은 전쟁터로 실려 갔고, 병사들의 이동과 물자 수송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전쟁 후 마장의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영조실록』(1751년)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따르면, 마장리는 여전히 행정 구역으로 남았지만, 실질적인 말 사육 기능은 쇠퇴했다. 이 과정에서 마장은 점차 농지로 변모하며, 도성 내 채소 공급의 배후지로 역할을 바꿨다.
비하인드: 이름 속 숨은 이야기
“마장동”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목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조선 백성들의 삶과도 연결된다. 일부 구전에서는 마장이 “말을 다루는 장인(馬匠)“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는 설도 전해진다. 이들은 말뿐 아니라 가축 관리 기술을 터득한 이들이었고, 후에 축산 문화로 이어지는 씨앗이 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이름 하나에 담긴 이런 이야기는 마장동이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업과 얽힌 공간임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도축장과 축산물 시장의 태동
마장동이 오늘날의 이미지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본은 조선의 경제를 착취하며 도시 구조를 재편했다. 이때 마장동은 농지 중심의 조용한 마을에서 축산 중심지로 변모했다. 1910년대 숭인동에 있던 도축장이 마장동으로 옮겨졌고, 이는 일본의 식민 통치 전략과 맞물려 있었다. 일본은 조선의 가축을 수탈해 군수품과 식량으로 활용했고, 마장동은 그 중심지로 낙점받았다.
우시장과 도축장의 시작
1930년대에 이르러 마장동은 본격적인 우시장으로 발전했다. 당시 경성부는 급속한 도시화로 식량 수요가 늘었고, 마장동의 넓은 터와 교통 편의성(청계천과 경원선 철도 인근)이 도축장 입지로 적합했다. 1958년에는 정식 우시장이 개설되었고, 1961년 제1시립도축장이 건립되며 마장동은 “서울의 푸줏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소와 돼지가 몰려들었고, 상인들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비하인드: 축산 시장의 어두운 그림자
마장동 축산물 시장의 번성 뒤에는 어두운 비하인드가 있다. 일제강점기 도축장은 일본군의 식량 공급을 위해 강제 운영되었고, 조선 농민들은 가축을 헐값에 빼앗겼다. 해방 후에도 이곳은 가난한 상인들의 생계 터전이 되었지만, 비위생적인 환경과 과도한 노동으로 악명 높았다. 1960년대 한 신문 기사에는 “마장동 도축장에서 나는 악취가 동네를 뒤덮었다”는 주민들의 불만이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힘든 환경 속에서도 마장동은 서울 시민의 식탁을 책임지며 경제적 허브로 성장했다.
근대: 먹자골목과 서민의 삶
6.25 전쟁(1950~1953) 이후 마장동은 재건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식량 공급은 생존의 핵심이었고, 마장동의 축산물 시장은 그 중심에 있었다. 1974년 경매제가 도입되며 전통 우시장은 쇠퇴했지만, 도축장은 민간으로 불하되며 계속 운영되었다. 이때부터 마장동은 고기 유통뿐 아니라 “먹자골목”으로 변모했다.
먹자골목의 탄생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마장동 먹자골목이 형성되었다. 축산물 시장 근처에 무허가 포장마차가 들어서며, 신선한 고기를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늘어났다. 소곱창, 돼지갈비, 삼겹살 등 다양한 고기 요리가 인기를 끌었고, 마장동은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는 공간이 되었다. 1990년대에는 “마장동 한우 거리”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고기 맛집이 성업했다.
비하인드: 무허가와의 싸움
먹자골목의 번영은 무허가 건축물이라는 어두운 면과 공존했다. 35년간 불법으로 운영된 이 골목은 2024년 5월 성동구의 철거 결정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주민들과 상인들은 “추억의 공간”이라며 철거에 반대했지만, 안전 문제와 도시 정비라는 명분 앞에 결국 자취를 감췄다. 철거 과정에서 상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물건을 정리하는 모습은 마장동의 서민적 정서를 대변한다.
현대: 축산물 시장과 재개발의 갈림길
1998년 도축장이 충북 음성군으로 이전하며 마장동은 도축 기능 대신 유통 중심지로 재편되었다. 현재 마장동 축산물 시장은 하루 300톤 이상의 고기를 거래하며,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정육식당과 고기 전문점은 여전히 관광객과 주민을 끌어모으고, “마장동 소고기”는 품질로 유명하다.
한전 부지와 재개발 논란
마장동의 현대사는 재개발로 뜨겁다. 2024년 10월, 한국전력공사가 마장동 자재센터 부지(3만9567㎡)를 매각 공고하며 주목받았다. 감정가 4800억 원, 개발수익금 포함 5000억 원을 웃도는 이 땅은 지하철 5호선 마장역과 왕십리역에 인접한 “알짜 부지”로 꼽힌다. 2011년부터 개발이 논의되었지만, 높은 가격과 복잡한 이해관계로 13년간 주인을 찾지 못했다.
비하인드: 재개발의 이면
재개발은 마장동의 미래를 바꿀 기회지만, 주민들에겐 위협이다. 아파트 단지와 상업 시설이 들어서면 집값과 임대료가 치솟아 기존 상인과 서민들이 쫓겨날 가능성이 크다. 2024년 한 주민은 “축산 시장이 없어지면 마장동의 정체성도 사라진다”고 우려했다. 반면, 개발업계는 “주거와 업무 복합 단지로 동부권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며 기대한다. 이 갈등은 마장동의 과거와 미래가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마장동 사람들의 이야기
마장동의 역사는 사람들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다. 축산물 시장에서 30년간 칼을 잡은 최영일 씨(초이스미트 대표)는 “마장동의 삭막한 공기 속에서 기술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새벽 4시 출근해 돼지와 소를 해체하며 시작한 그의 인생은 마장동의 거친 현실을 상징한다. 또 다른 주민 김 씨는 “먹자골목에서 친구들과 고기를 구우며 웃던 날들이 잊히지 않는다”며 추억을 떠올렸다.
비하인드: 축산 노동의 고난
축산물 시장의 번영 뒤에는 힘든 노동이 있었다. 도축장에서 일하던 이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손이 쉴 틈 없이 움직였고, 칼날이 무뎌질 때마다 새로 갈아야 했다. 폐쇄적인 기술 전수 문화 속에서 신입들은 허드렛일로 시작해 몇 년 만에야 칼을 잡았다. 이 고된 과정은 마장동이 “서울의 푸줏간”으로 성장한 밑거름이었다.
결론: 마장동의 과거와 미래
마장동은 조선의 말 목장에서 시작해 일제의 도축장, 근대의 먹자골목, 그리고 현대의 축산 시장으로 이어진 역사를 품고 있다. 그 비하인드에는 민족의 아픔, 서민의 땀, 그리고 변화의 갈등이 녹아 있다. 오늘날 마장동은 재개발의 기로에 서 있지만, 그 정체성은 여전히 고기와 사람들의 이야기로 정의된다. 독자 여러분, 마장동에 가서 소고기 한 점 먹으며 이 이야기를 떠올려보세요. “뻥!” 소리처럼 터져 나오는 역사의 맛을 느끼며, 마장동의 다음 챕터를 함께 기대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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