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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간식 뻥튀기의 기원과 역사

알고 먹으면

by ALGOO_M 2025. 3. 1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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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튀기는 한국인의 추억과 정서가 깃든 대표적인 간식이다. “뻥” 소리와 함께 튀어나오는 고소한 곡물의 향, 그리고 입안에서 바삭하게 부서지는 식감은 어린 시절 골목길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간식에는 깊은 역사와 흥미로운 비하인드가 숨어 있다. 삼국 시대의 공놀이에서 시작해 현대의 다양한 뻥튀기까지, 이 글에서는 뻥튀기의 기원부터 발전 과정,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풀어낸다. 자, 뻥튀기 한 봉지 들고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뻥튀기의 기원: 고대 한반도의 공놀이

뻥튀기의 뿌리를 찾으려면 고대 한반도로 돌아가야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삼국 시대(고구려, 백제, 신라)에 “축국(蹴鞠)“이라는 놀이가 성행했다. 축국은 가죽으로 만든 공을 발로 차는 스포츠로, 중국 당나라의 축국에서 유래했지만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는 발로 공을 차는 모습이 생생히 그려져 있으며, 이는 현대 축구와 뻥튀기의 먼 조상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축국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군사 훈련으로 활용되었다. 병사들이 체력과 협동심을 기르기 위해 공을 차며 경쟁했다는 기록은, 이미 고대부터 곡물과 놀이가 얽혀 있었음을 암시한다.

비하인드: 축국과 곡물의 만남

축국이 뻥튀기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곡물을 활용한 음식 문화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당시 곡물은 주식이었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하며 먹었다. 일부 학자들은 신라 시대에 곡물을 볶거나 튀겨 먹는 습관이 있었다고 추측한다. 예를 들어, 볶은 쌀이나 콩을 간식으로 즐겼다는 구전은 뻥튀기의 원형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축국을 즐기던 화랑들이 경기 후 볶은 곡물을 나눠 먹었다면, 그 장면은 뻥튀기의 고대 버전이라 상상해도 재밌지 않을까?

근대 뻥튀기의 도입: 일본과 미국의 영향

현대적 뻥튀기의 기원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뻥튀기는 곡물을 고온·고압으로 팽창시켜 만드는 간식으로, 그 기술의 시작은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1901년, 미국 미네소타의 알렉산더 앤더슨(Alexander Anderson) 박사는 곡물을 팽창시키는 시리얼 기계를 발명했다. 이 기계는 밀봉된 용기에서 곡물을 가열한 뒤 압력을 갑자기 풀어 부풀리는 원리였다. 몇 년 후, 이 기술은 만국박람회에 출품되었고,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일본에서는 이를 “폰가시(ポン菓子, 뻥과자)“라 부르며 지역 간식으로 발전시켰다.

일제강점기와 뻥튀기의 한국 상륙

일제강점기(1910~1945)에 일본의 폰가시는 조선으로 들어왔다.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센베(煎餅)를 만드는 기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뻥튀기 기계가 개발되었고, 이는 조선의 장터로 퍼졌다. 그러나 뻥튀기의 한국화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었다. 조선 사람들은 쌀, 보리, 옥수수 같은 토착 곡물을 활용해 자신만의 뻥튀기를 만들었다. 특히 1930년대부터 장터에서 뻥튀기 장수가 등장하며, “뻥이요!“라는 외침과 함께 큰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비하인드: 일본군과 뻥튀기 기계의 전설

만화가 허영만의 『식객』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일제강점기 말, 일본군이 버리고 간 청룡포(군복)를 잘라 뻥튀기 기계를 만든 장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사실 여부를 떠나, 당시 조선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창의적으로 뻥튀기를 발전시켰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기술이 씨앗이었다면, 한국인의 손맛과 정서가 뻥튀기를 꽃피운 것이다.

뻥튀기의 전성기: 1960~70년대 골목 풍경

6.25 전쟁 후 한국은 폐허 속에서 재건을 시작했다. 1960~70년대 경제 개발 시기, 뻥튀기는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는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뻥튀기 장수는 트럭이나 리어카에 기계를 싣고 동네를 돌며 쌀, 보리, 옥수수를 튀겼다. “뻥!” 소리와 함께 튀어나오는 하얀 뻥튀기는 아이들에게 마법 같은 순간이었고, 부모들에겐 저렴한 간식이었다.

뻥튀기의 종류와 다양성

이 시기 뻥튀기는 단순한 쌀뻥튀기(튀밥)에서 벗어나 다양해졌다. 마카로니 모양, 앵두콘(오색뻥튀기), 개나리콘, 떡뻥 등이 등장하며 맛과 모양이 풍부해졌다. 특히 앵두콘은 감미료와 식용 색소로 알록달록하게 만들어져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호프집에서는 마카로니 뻥튀기를 안주로 내기도 했는데, 100g에 365kcal로 밥보다 열량이 높아 배고픈 이들에게 든든한 한 끼였다.

비하인드: 뻥튀기 장수의 기술과 마음

뻥튀기 장수는 단순한 상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손님의 곡물 상태와 취향을 고려해 압력과 온도를 조절했다. 예를 들어, 노인에겐 부드럽게, 아이들에겐 바삭하게 튀겨주는 세심함이 있었다. 국가유산청 자료에 따르면, 30년 경력의 뻥튀기 장수 김영목 씨는 “손님마다 다르게 튀긴다”고 말하며, 뻥튀기가 단순한 음식을 넘어 따뜻한 정을 나누는 매개체였음을 증언했다.

뻥튀기의 과학: “뻥” 소리의 비밀

뻥튀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과학적 원리에 기반한다. 뻥튀기 기계는 밀폐된 용기에 곡물과 약간의 물을 넣고 고온(약 200℃)과 고압(10~15기압)을 가한다. 이때 곡물 속 수분은 기화되지 못하고 억눌린 상태로 열을 축적한다. 뚜껑을 열면 압력이 순식간에 풀리며, 수증기가 급속히 방출되면서 “뻥” 소리가 난다. 이 과정에서 곡물의 전분은 덱스트린으로 변하며 다공질 스펀지 형태로 부풀어 오른다.

비하인드: 단맛의 오해

뻥튀기가 단맛을 내는 이유를 탄수화물 때문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계에 감미료(설탕, 물엿 등)를 첨가하기 때문이다. 전분이 덱스트린으로 변하며 소화가 쉬워지지만, 단맛은 인위적으로 더해진 결과다. 이 작은 속임수는 뻥튀기를 더 맛있게 만든 비결이었다.

팝콘과의 관계

팝콘도 뻥튀기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까? 팝콘은 폭립종 옥수수의 단단한 껍질이 자연스러운 압력 용기 역할을 해 고온에서 터지며 부풀어 오른다. 뻥튀기는 인위적인 기계를 통해 압력을 가한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곡물이 팽창한다는 원리는 비슷하다. 어쩌면 팝콘은 뻥튀기의 자연스러운 선배일지도 모른다.

현대 뻥튀기의 진화: 추억에서 트렌드로

1980년대 이후, 뻥튀기는 대형마트와 공장 생산으로 대중화되었다. 원반형 뻥튀기는 80년대 전용 기계가 개발되며 인기를 끌었고, 쥐포나 가래떡 같은 새로운 재료도 뻥튀기로 변신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유기농 쌀로 만든 “떡뻥”이 유아 간식으로 떠오르며, 뻥튀기가 건강식으로 재조명받았다.

비하인드: 뻥튀기 기계의 실험 정신

TV 프로그램 『스펀지』와 『간 위험한 방송』에서는 뻥튀기 기계로 팝콘, 통닭, 심지어 마른 과일을 튀기는 실험이 방송되기도 했다. 통닭은 성공했지만 과일은 타버리는 실패로 끝났는데, 이는 뻥튀기 기술의 무한한 가능성과 한계를 보여줬다. 외국인들도 뻥튀기 만드는 과정을 신기해하며, 유튜브에서 “Korean puffed rice”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뻥튀기의 문화적 의미

뻥튀기는 한국인의 삶에 깊이 뿌리내렸다. 60~70년대 장터에서 아이들이 뻥 소리에 맞춰 뛰놀던 기억, 골목마다 울리던 “뻥이요!” 외침은 세대 간 공감대를 형성한다. 오늘날 뻥튀기는 비유적으로도 쓰인다. “면적 뻥튀기”나 “성과 뻥튀기” 같은 표현은 과장이란 뜻으로, 뻥튀기의 본질을 재치 있게 담아낸다.

비하인드: 뻥튀기와 민족의 정서

일제강점기 뻥튀기가 조선에 들어왔을 때, 일본은 이를 식민지 통치의 도구로 활용하려 했다. 하지만 조선 사람들은 뻥튀기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창조하며, 억압 속에서도 작은 기쁨을 찾았다. 뻥튀기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생존과 저항의 상징이었다.

결론: 뻥튀기의 미래

뻥튀기는 삼국 시대 축국에서 시작해 근대의 기술 도입, 전성기의 추억, 그리고 현대의 재발견까지 긴 여정을 걸어왔다. 그 뒤에는 고대인의 놀이, 조선인의 창의, 서민의 손맛이 녹아 있다. 앞으로 뻥튀기는 건강식 트렌드와 글로벌 인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진화할 것이다. 블로그 독자 여러분, 뻥튀기 한 조각을 씹으며 이 이야기를 떠올려보세요. “뻥!” 소리처럼 터져 나오는 한국의 맛과 정서를 느끼며, 다음엔 어떤 뻥튀기가 우리를 놀라게 할지 기대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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